이야기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 왓집지기 윤선희, 김정희,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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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디자이너 인터뷰_왓집지기 윤선희, 김정희, 문주현

컬처리포터 : 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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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종일관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깔깔깔 웃다 보면 어느새 오랜 단골집처럼 이곳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이 세 명의 왓집지기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고 긍정적인 기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거겠지. <왓집>이라 불리는 아기자기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제주 소품들도,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도, 복잡하게 붙어있는 행사 포스터도 아닌 반짝이는 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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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집의 ‘왓’은 제주어로 넓은 밭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영어로 What은 무엇? 어떤?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왓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런 문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공간.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편견에 왓집지기들은 묻는다. “예술하면서 재미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살 순 없나요?”

 그 질문에 직접 답하기 위해 그녀들이 꾸민 이 공간은 여러 ‘사건’들이 공존해 있다. 각자 브랜드의 소품들을 팔 수도 있고, 각종 교류뿐만 아니라 ‘제주’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서귀포예술시장에서 처음 만난 세 사람의 인생이 모여 오늘날 이곳이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세 여자는 말한다.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건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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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집에서 진행하는 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지도 만들기’는 제주도의 마을이야기를 지도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마을 이야기와 문화를 접목시킨 이야기지도는 마을의 여러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기록적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을의 오랜 맛집과 미용원의 역사에서부터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가는 제주 옛모습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까지, 왓집의 이야기지도에는 말 그대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난다. 이야기지도를 통해 과거 마을 중심, 단락 중심의 제주 문화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알려주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큰 가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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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 한 명 사람들을 만나며 신뢰를 쌓고 이야기를 모으는 일은 사람들의 인생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고생도 많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마을 주민들과 친해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길 가는 마을 어르신을 쫓아가며 질문할 수 있는 용기와 때로는 어르신들과 함께 낮술 한잔 걸치며 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교성도 필요한 일이었다. 간단히 듣기만 했는데도 꽤나 힘들고 긴 여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세 왓집지기들, 얘기를 하는 내내 싱글벙글 웃고 있다. 세상에, 어르신들이랑 친해져서 막걸리 마신 이야기, 지나가다 예쁜 집에 무조건 찾아가서 차 마신 이야기 등등 이들에게는 그 과정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이미 너무 즐거운 일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이기에 지금까지 꾸준히 여러 마을의 이야기지도를 만들며 지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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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지도가 세상에 나왔을 때 모두들 ‘그래, 제주에 이런 자료가 필요했어!’라고 공감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많은 어르신들과 제주의 옛모습을 아는 분들 그리고 제주의 미래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지도 프로젝트와 왓집지기들을 응원했다. 모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감히 용기내지 못한 일들을 그녀들은 씩씩하고 멋지게 해내고 있다. 이 이야기지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제주, 제주 사람들도 몰랐던 제주의 시간들을 전하고자 한다는 그녀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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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너무나 빠르게 달라지는 제주. 어제 있던 건물이 오늘 사라지기도 하고 어느새 출근길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기도 한다. 요 몇 년간 제주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빠른 변화가 낯설지 않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모두가 발전과 변화에 정신 없이 달려갈 때 왓집지기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가끔은 걸어온 길도 돌아보고 주변의 풀꽃도 한번 쳐다보자고. 우리가 지나온 소소하지만 정겨운 시간들을 기억하자고.

 문화를 디자인 하는 일은 때때로 보다 더 자주 많은 현실의 벽과 부딪히는 과정이다. 왓집지기들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정말 재미있고 가치 있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척박한 제주 문화의 땅에 단단한 씨앗을 뿌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