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 현택훈

B3 %ed%98%84%ed%83%9d%ed%9b%88 %ec%82%ac%ec%a7%84 %ec%95%88%eb%af%bc%ec%8a%b9%ec%9c%bc%eb%a1%9c %ed%91%9c%ec%8b%9c%ed%95%b4%ec%a3%bc%ec%84%b8%ec%9a%94

돌고래와 레코드와 그리고 4.3을 말하다. ‘슬픔은 제 시의 원형입니다.’

컬처리포터 : 김은정


%ed%98%84%ed%83%9d%ed%9b%88-3

Q 현택훈 시인은 제주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이 제주인 것과 시를 쓰는 것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A 몇 년 전에 육지에서 취재 차 내려온 한 화가와 제주도 이곳 저곳을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그 화가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겠어요.” 뜻밖의 말에 제가 놀라 물었더니 그 화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무슨 그림이 필요 있겠어요.” 그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제주도가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면 다 시가 될 것 같지요. 하지만 그러한 시는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언어를 구사해도 자연만 하겠습니까? 유년기에 제주의 풍광이 저를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점도 있겠지만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점점 지우고 있어요. 가급적이면 제주의 눈부신 경치를 노래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어요. 하지만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 제주의 역사와 문화는 저의 시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ed%98%84%ed%83%9d%ed%9b%88-6

%ed%98%84%ed%83%9d%ed%9b%88-11

Q 그렇다면 제주라는 환경이 작가로서 성장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인데 꼭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 의외네요. 그 부분을 더 말씀해 주시죠.

A 제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이 사라봉 등대입니다. 유년기에 그곳에 놀러 갔다가 낭떠러지 위에 앉아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우울할 때는 그 곳을 찾곤 했지요. 제 시의 슬픔의 원형이 그때 형성됐는지도 모릅니다. 화북2동 감귤 과수원 집과 사라봉 등대가 저의 원풍경입니다. 시를 쓸 때 역설적이게도 슬픔이 큰 힘이 됩니다. 제주는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속에는 비극을 품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런 이면성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시 속에 숨은 슬픔을 노래하게 됩니다.

%ed%98%84%ed%83%9d%ed%9b%88-1

Q 현택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 『남방 큰 돌고래』입니다. 남방 큰 돌고래는 시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시집 얘기를 들려주세요.

A 제 첫 번째 시집 제목은 『지구 레코드』입니다. 그 시집의 기저에는 죽은 막내외삼촌이 있습니다. 그 막내외삼촌으로부터 감수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레코드 판이 빙빙 돌 듯이 지구도 도는데, 슬픔의 순환을 음악으로 위로 받는 그런 시들이지요. 첫 번째 시집이 유년의 기억과 슬픔의 근원에 대해서 노래했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제가 제주도 고향 얘기를 주로 썼습니다. 남방 큰 돌고래는 제주도 주위를 빙빙 도는 돌고래입니다.

%ed%98%84%ed%83%9d%ed%9b%88-10

%ed%98%84%ed%83%9d%ed%9b%88-2

Q 그 돌고래가 남방 큰 돌고래군요. 저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돌고래를 좋아하시는 거군요.

A 외가가 협재인데 비양도가 보이는 바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에 물 위로 솟구치는 남방 큰 돌고래를 처음 봤죠. 그때의 경이로움을 잊을 수 없어요. 제주의 역사를 뒤늦게 공부하면서 제주 역사의 슬픔을 담은 시를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제가 주로 남방을 입어서 시집 제목이 남방 큰 돌고래인 것 같다며 웃더군요.

%ed%98%84%ed%83%9d%ed%9b%88-8

%ea%b3%a4%ec%9d%84%eb%8f%99-1

Q 제1회 4.3평화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셨죠? 늦었지만 축하 드립니다. 수상작 「곤을동」을 소개해 주시죠. 이 기회에 시 작품도 감상하고 싶군요. 시를 들으며 현택훈 시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A 부끄럽습니다. 4.3에 대해 연구자와 창작자들의 많은 노고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노력에 그저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느낌입니다. 4.3 시를 쓰기 위해 제일 먼저 곤을동을 찾았어요. 제 고향이 화북인데 곤을동은 화북에 있는 잃어버린 마을입니다. 제 큰고모부와 큰고모도 4.3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뒤늦게야 알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에 놀던 화북 바닷가인데 그 뒤편 마을에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지요. 저는 시를 쓰기 위해 그 현장에 가서 걷고 앉아도 보고 했습니다. 그때의 원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지요. 4.3 시를 쓴지 몇 년 되지 않아 이렇게 큰 상을 받아 무척 부담이 됐습니다. 이제는 어떤 의무감이 들기도 합니다. 올레 18길을 지나는 분들도 곤을동을 보고 ‘곤을동’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b3-%ed%98%84%ed%83%9d%ed%9b%88-%ec%82%ac%ec%a7%84-%ec%95%88%eb%af%bc%ec%8a%b9%ec%9c%bc%eb%a1%9c-%ed%91%9c%ec%8b%9c%ed%95%b4%ec%a3%bc%ec%84%b8%ec%9a%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