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시를 쓰는 김신숙

%ea%b9%80%ec%8b%a0%ec%88%99 %ec%bb%ac%eb%94%94 2

보육원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인 김신숙

컬처리포터: 김은정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5

아동 청소년기를 우리는 밝고 좋은 시기로 묘사한다. ‘꽃다운 시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제일 좋을 때다’라고도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내는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 시절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답이 없는 질문들로 답답하던 시기였다.

여기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보육원과 지역아동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한 시인이 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아름답지만 힘든 시기를 함께하는 김신숙 시인을 만나보았다.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17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13

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제가 우리 가족들에게 별명이 애기업개이고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사회적인 관심으로 아이들을 만난 건 대학시절 에듀소피아라는 동아리를 만들면서입니다. 저는 제주대학교 철학과 1기입니다. 그러니 제주대학교 철학과 학부 출신 중 가장 선배인 거죠. 당시 철학과 교수님들은 열정을 가지고 우리 과 학우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는데 덕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어린이 철학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교육봉사 같은 것을 다녔어요. 그냥 대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어떻게 하면 신나게 웃기게 아이들과 놀까 공부할까 궁리하며 수업을 준비하고 그런 날의 연장 선에서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는 활동이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서른이 넘은 뒤 잘못된 사회를 비난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어른입니다. 서른이 넘은 뒤에는 잘못된 사회를 바꿔 나가야 한다는 제 자신의 각오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걸 지키기 위해 교육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많이 접하지 않으면 한 줄 쓰는 것도 힘든, 자기표현을 할 수 없는, 그러니까 컴맹처럼 자기맹이 될 수도 있거든요. 자기맹, 그러니까 자기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하는 자기맹, 단어가 이상한가요?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4

왜 시인가요?

아이들은 아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경험한 일을 써야 글을 신나게 쓰고 생각도 살아있는 글을 쓴다는 걸 알았죠.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는 공간적인 면에서 밖으로 나가 야외수업을 한다거나 긴 경험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만나는 일이 많아, 아이들의 감정을 일렁이는 책을 많이 읽어 주고,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 중 시 쓰기가 최고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생각을 조탁하며 문장을 만들어 보고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도 하나의 예술작품이기에 한 편을 쓰고 친구들과 나누어 읽고 감상을 하면 아주 뿌듯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긴 글은 발표 시간이 길어 낭송하기 힘든데, 시는 일단 짧아서 자신이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낭송하고 함께 수업한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며 발표할 수도 있는 아주 좋은 형식이죠. 물론 제가 시인이라 시를 더 편애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전 시가 사람의 감각기관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주 아름다운 석양을 보았을 때 아무리 간단한 악기인 피리더라도, 들고 오지 않으면 연주를 할 수 없고 그림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시는 다릅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한 문장을 가장 짧게 다듬어 마음에 묻을 수 있지요. 시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성찰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16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9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6

가령 “사과씨 같은 비가 내렸다.” 또는 “고래가 어서 와 하며 물 폭죽을 쏘아 준다.”는 문장 같은 것은 아이들이 자연이나 동물들을 보며 즉각적으로 반응한 훌륭한 동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관찰을 할 수 있는 아이라면 사과한 쪽도 야금야금 정성껏 먹고, 돌고래가 반겨주는 마음을 읽는 어른이 될 수 있겠죠.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4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7

어린이와 시를 함께 쓰는 것은 어떤 악기를 하나 다룰 수 없더라도 음표를 읽지 못하더라도, 도화지 한 장 살 돈이 없더라도 자신의 삶을 미적인 예술의 세계로 이끄는 문을 열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는, 시적인 것을 보는 삶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감각하는 일이거든요. 남이 아닌 자신의 삶을요. 그런 시 쓰기, 자신의 삶을 잘 감각하며 자기맹이 아닌 자신의 중심이 되는 그런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습니다.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5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하운의 시집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더 먼저는 헌책방에서 본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서 베껴서 여름방학 숙제로 낸 적도 있는데, 그 시가 모든 어른들이 다 아는 시인 줄 모르고 대범하게 베껴서 “ 우물 속에는 한 소녀가 있소” 하면서 베껴 썼지요. 중학교, 고등학교 전부 문예부를 했고 대학에서도 문학동아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근 십 년 동안 정말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네요. 학교에서도 지나가는 선생님이 요즘은 어떤 책 읽냐고 물어 보았으니까요.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1

철학과에 다녀서 여러 인문학 서적들도 많이 읽었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도 감기약처럼 시집을 읽었고, 실연을 당했을 때도 시집을 읽었으며, 애인이 생겼을 때도 좋은 시를 필사하여 편지를 썼어요. 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를 악기로 만들어 줍니다.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21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십 년 동안 시를 쓰지 않고 일만 했어요. 그러는 사이 하는 일은 번창했지만 저는 점점 병이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를 사랑했던 삶이 진정성은 있었는지, 정말 시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34세에 다시 시를 쓰니, 십 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던 그 시절에 나를 가슴 아프게 했던 슬픈 이야기 아니면 내가 직접 경험한 친구의 죽음, 또는 죽거나 병든,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가슴 아프게 했던 일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군요.
%ea%b9%80%ec%8b%a0%ec%88%99-%ec%bb%ac%eb%94%94-9

시인으로서 저는 길을 걷습니다. 오늘도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보이는 길을 걷지요. 가슴에 갈은 낫같이 빛나는 달이 뜹니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초저녁부터 이불 위에 둥글게 몸을 말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오십여 년 넘게 물질을 한 해녀, 지금은 똥군이라고 하는 물질 못하는 할망인데요. 어머니 모습이 고막 같아 보입니다. 사실 고막은 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어머니 모습이 고막 같아요.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세상과 세상의 경계에 있는 고막인지를 생각합니다. 엄마 옆에 가끔은 가만히 누워서 나의 엄마 자궁과 내 자궁 같은 것을 상상하고 그런 것을 표현 할 수 있는 시의 문장을 찾습니다. 그리고 씁니다. 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