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새로운 변신

Yun Meeyoung 2

요즘 제주에는 이곳 저곳 아기자기한 소규모 프리마켓들이 꽤 생겨나고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적인 아트갤러리도 늘어가는 추세다.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제주의 프리마켓과 아트갤러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섬의 외진 곳에 자리잡은 감귤창고가 문화의 숨결을 품은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통합한 문화적응(cultural adaptation)의 좋은 사례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신샘공방의 프리마켓과 중선농원은 한국사회의 급변하는 구조적 진화의 중심지에 놓여있다. 신샘마켓이 위치한 수산리는 15세기 초반에 형성되어 지금은 420 세대, 약 1,2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물이 맑고 산이 아름다워서 ‘수산’이라 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대부분의 외지 사람들은 수산리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산리에 들어서니 손으로 직접 만든 것 같은 파랑, 빨강색의 알록달록한 트랙터들이 이곳 저곳 눈에 띈다. 이 마을은 귤도 풍요롭게 자라는 지역이다. 구조적 변화라면, 몇 년 전, 귤을 저장하고 유통하는 일이 개인에서 농업협동조합은행인 농협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농업협동조합으로 감귤저장과 유통이 넘어가면서 감귤창고는 마을사람들에게는 쓸모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회적 구조 변화가, 이 낡은 감귤창고가 문화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탄생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수산리 마을에서는 이용가치를 다했다고 생각한 이 감귤창고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의 신샘공방은 낡은 감귤창고를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신샘공방이 운영하는 프리마켓을 잠시 둘러보고 있을 때, 현지에서 오래 살았다는 한 주민이 다가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요?” 그는 제주에 최근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하위문화(subculture)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오직 서울이나 외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보헤미안(bohemian), 전통타파주의(iconoclast), 그리고 노마드(nomad)적 요소들이, 그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 같은 이 조그만 마을에서, 적어도 다른 4개국에서 온 것과 같은, 제주의 이질감 현상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레게머리와 염색옷과나 문신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제주의 비주류 속에도 한국의 주류처럼 보이는 현상이 녹아 있다.

다른 프리마켓 운영자들이 그렇듯이, 신생공방의 이중선씨도 원래는 육지사람이었다. 그는 가구디자인 전공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9년 동안 테크니컬한 드로잉과 실사 렌더링 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어쩌면 이중선씨는 한국의 주류에 가장 알맞고,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삶의 전형적인 모델로 살아왔을 지 모른다.

그러나 종종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일까? 몸이 이중선씨에게 변화를 요구했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변화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허리 통증은 하루 종일 설계대에서 일하며 감당해야 했던 스트레스의 산물이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일이 무엇을 창조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결국 통증이 그를 압박했고, 그를 괴롭히던 통증은 도시를 떠나 제주로 향하게 만들었다.

2013년 이중선씨는 제주로 왔다. 특별한 일정도 없었고, 부러 새 삶을 찾지도 않았다. 단지 자고 먹는 것, 그리고 밖에서 나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 그런 단순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로움을 약간 맛보면, 때로 무모해 보이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정선씨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고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제주 시내로부터 동쪽으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이 곳 수산리에서 낡은 감귤창고를 5년 간 빌리는 계약에 사인을 하고 만 것이다.  감귤창고 한쪽 구석에 그가 살 수 있는 협소한 주거 공간을 마련했고, 나머지 공간의 대부분은 목공 작업실로 바꿨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진짜 미쳤을 수도 있다.

수산리 마을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신생공방이 그 지역의 중심이 될 거라고는 그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사교성에는 전혀 재능이 없었지만, 그 목공 수업은 많은 사람들과 강력한 동료애를 형성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수업에 일찍 와서 늦게 돌아갔고,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의 수업은 마치 그들이 굶주려있던 그토록 갈망하던 열정과 에너지를 일깨워준 것 같았다.

2014년 6월, 이중선씨는 손수 만든 가구 몇 점을 팔고자 내 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것이 인기의 정점인 줄 알았지, 프리마켓이 설 정도로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그냥장터’ 프리마켓은 해를 거듭할 수록 인기가 많아졌고, 이중선씨는 그의 직업명인 신샘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를 괴롭히던 허리통증도 나아졌고, 지금은 결혼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프리마켓은 이제 그와 그의 아내가 좋아서 하는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협소한 공간의 신샘공방 (330 제곱미터)이 온갖 종류의 목재와 아름다운 불빛 전구들로만 가득 찬 게 아니다. 그 곳은 우정과 커뮤니티와 독창성으로 파닥파닥 뛰는 심장박동으로도 충만하다. 제주의 이곳 저곳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세대와 연고를 뛰어 넘어, 서로 교류하고 어우러지기 위해 이곳 수산리로 몰려들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이곳 신샘공방 프리마켓에서는 새로운 문화가 급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와 정통성, 심지어는 존엄성의 도용과 투쟁하고 있는 제주에서, 이 변방의 새로운 현상이 진보적 문화의 한 예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문화현상은 제주의 성장과 개발제일주의의 걱정스러운 양상에 균형을 잡아주는 긍정적 지렛대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긍정적 변화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봐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신샘마켓을 좋아하고 또 그 프리마켓이 마을에 가져다 준 새로운 다양성을 좋아한다. 수산리에는 따뜻한 포용의 느낌이 살아있고, 미래에 대한 열의로 가득하다.
중선 농원은 밖에서 보면 전형적인 제주도 농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좀 다르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 농원에 자리잡은 건물들은 커다란 유리창이 달려 있고, 지붕은 보통 건물보다 훨씬 높다. 이유는 중선 농원이 단순히 농장이 아니라 문화를 위해 디자인된 공간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중선농원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인 정재호대표는 이 농원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으며, 당시의 모습은 어땠었는지, 그리고 이 농원의 실제 소유주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지금의 이 갤러리 공간은 과거에는 농원의 감귤 창고였고, 지금의 도서관 자리는 농원에 필요한 기계와 도구들을 보관하던 작은 창고였다.

중선농원의 실제 주인은 국내 외교 권위자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와 부인 김재옥씨이다. 이 부부는 선친의 땀과 숨결이 스며있는 이 농원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깊었다. 고민 끝에 제주 출신 건축가, 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재호 대표 등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감귤을 품은 감귤창고에서 다양한 문화의 숨결을 품은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작년 4월 정식 오픈한 네 채의 건물은, 큰 감귤창고는 미술전시장인 ‘갤러리 2,’ 작은 창고는 카페, ‘청신재’로 불리는 열린 인문도서관, 그리고 거주공간인 게스트하우스 ‘태려장’이다.

정재호 대표는 원래의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 보다는 원형을 가능한 한 보존하면서, 필요한 목적에 맞게 일부만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이 농원의 소유주인 문정인 교수 부부의 절실한 바램이기도 했다. 문교수는 지금은 비록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의 고향과 가족, 유년시절에 대해 애절한 추억이 서려있는 이 농원이 제주의 문화를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건물의 원형은 남겨놓고자 했다는 것이다.

건물의 벽 안에 남아 있는 것과 건축물의 구조는 문화의 단면들이며, 개인적으로 보면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건물을 허무는 것은 제주의 문화와 한 개인의 역사를 허무는 일이나 다름 없다. 건축이란 그저 실용적인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제주의 감귤창고 외벽의 대부분은 화산암으로 지어졌다. 제주에서 나온 재료들로 지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제주다움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정재호 대표가 처음 이 농원에 찾았을 때, 그 건물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감귤창고로도 한 동안 이용되고 있지 않았다. 낡은 지붕은 너덜거려 교체해야만 했다. 지금은 자연광이 더 들어올 수 있도록 넓은 유리창을 넣었고, 가능한 한 건물을 열린 공간으로 보일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 4채의 건물들을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데 총 9개월이 소요되었다. 정대표는 이 작은 시골마을에도 한국의 다양한 문화예술이 유입되기를 바란다. 이 곳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알려진 현대적 작품들에 초점을 맞췄으며, 이 작은 시골 갤러리에 걸맞게 독특한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다른 갤러리에 비해, 이 공간이 작아 보일 수 있겠지만 정대표는 그의 갤러리로 오는 사람들이 서울의 큰 갤러리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예술적 자양분을 받고 가길 간절히 원한다. 그러한 바램이 바탕이 되어, 이곳 갤러리에서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신생 작가보다는 지명도가 있는 예술가의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제주 도민뿐 아니라,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관심을 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제주 도민들의 전통적인 수입원이었던 감귤농장, 이제 더 이상 감귤창고 용도로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감귤창고가 종종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는 제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뿐 만 아니라, 농업이 가져다 주는 많은 이점들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정대표는 마지막으로 그의 친구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 농원이 그저 이익을 만들어 내는 장소로 기억되기 보기보다는, 우리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고, 자연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며,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상기시켜주는 문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수산리 신샘마켓처럼, 이 중선농원 역시 제주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 두 문화공간을 보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문화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임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