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와 호흡하는 전통을 꿈꾸다, 피리연주자 김시율

피리독신01

국악이 단지 ‘우리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우리 것이 왜 좋은지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거죠.
이제는 국악도 아티스트의 개성을 담은 하나의 음악으로서, 동시대와 호흡하는 가치 있는 결과물을 내보여야 할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히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시율 아트컴퍼니’를 운영하고 있고, 전통음악 연주자이자 작곡가, 기획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시율 입니다.

최근 여러 가지 프로젝트로 굉장히 바쁘신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는 권송희 판소리 랩(LAB)이라는 팀에 세션 및 편곡자로 참여하여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오는 8월 25일과 26일에는 <금강프로젝트>라는 활동을 통하여 아리랑을 주제로 ‘아라리오’라는 공연을 올릴 예정이에요. 전통음악,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아티스트 5명이 아리랑을 새롭게 해석하고 연주하는 공연으로, ‘아라리오’ 공연장에서 진행됩니다. 9월에는 평창에서 열리는 ‘첩첩산중’ 레지던시에 참여할 예정이고, 10월에는 ‘의외의 조합’이라는 갤러리에서 김시율 아트컴퍼니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김시율 아트컴퍼니’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김시율 아트 컴퍼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의 역할을 해요. 원래부터 연극, 미술, 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 오다가 시작하게 됐죠. 공연 제작, 연주,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음악과 공연예술 분야에 주력하고 있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김시율 아트 컴퍼니의 네트워크 내에서 서로 자유롭게 제안하며 프로젝트를 꾸려 나갑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전통’이 자신의 음악에 근본 뿌리이자 중요한 모티브라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고민 혹은 실천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제는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진정한 전통인가’, ‘전통의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고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적 가치라는 것이 전통음악을 박물관 속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전통 음악은 그 당시에 가치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니까, 그것을 살리고 동시대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그 ‘다른 해석’의 바람직한 방향은 본연의 가치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금강프로젝트>에서 아리랑을 다루는데, 아리랑은 정말 흔한 주제인 만큼 굉장히 많이 공연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공연들도 많아요. 그런데도 저희가 또다시 아리랑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이에요. 아리랑은 삶이고 생활이었다는 점, 누군가에 의해 한 순간 작곡된 것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음악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 거죠. 이런 식의 접근이 전통에 대해 제가 추구하는 접근법이에요.

전통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본연의 가치란 어떤 걸까요?

전통음악을 대한다는 것은 그것을 박물관 유리 너머로 안전하게 보관해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 연주하고 해체해 보기도 하며 ‘연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피리라는 악기를 연구하는 연구자인 거죠. ‘내가 이 악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관객에게 이해시킬까’,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악기를 연습하고 연주해서, 이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그게 국악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국악 하시는 분들이 ‘국악을 보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불만인 점이, 전통음악 공연이 항상 관객들에게 ‘지고 들어가는’, 말하자면 ‘들어주셔서 감사한’ 입장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된다는 거예요. 국악공연이 특색 있는 아티스트의 공연이 아니라 ‘보존’만을 위한 획일적인 공연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국악인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요즘엔 국악이 하나의 교과서적 정답처럼 정리되어버린 것 같아요. 자신만의 음악이 사라졌죠.

이제는 이 음악을 전통적 주법, 명인들이 연주했던 표현과 어느 만큼 유사하게 연주하는가를 따져서, 잘 된 전통이다 아니다 구분하는 것보다는
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의 개성과 철학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더 ‘전통적’이라는 것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국악을 ‘전통국악’, ‘현대적 국악’이라고 굳이 구분하기보다 그냥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맞는 말 같아요. 오늘날 모든 예술이 그 경계와 정의가 모호하듯이 국악도 마찬가지인 거죠. 오랫동안 제 스스로 전통의 뿌리, 전통음악의 장점에 대해 고민해 보면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모든 장르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소위 ‘퓨전’이라 불리는 형태의 현대적 국악을 ‘전통’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비판적 시각이 있어요.

주위 사람들은 제가 ‘전통’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 드렸듯이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만, 제가 하는 공연들이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형태의 전통 공연이 아니다 보니까 제가 항상 실험적인 것만을 하거나, 소위 ‘퓨전’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거죠.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바라보기-산조>라는 작품은, 첫 30분 동안은 굉장히 퓨전적으로 진행돼요. 스트리트 댄서, 디제이가 들어오고 화려한 조명과 무대를 이용하죠. 그런데 마지막 10분은 아주 간소한 조명과 함께, 음향장비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어쿠스틱한 산조를 들려줘요. 산조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요. 이 경우 앞의 30분은 마지막 10분의 ‘진짜’ 공연을 위한 사전 과정 혹은 장치이기 때문에, 겉으로 얼핏 보면 퓨전공연으로 비칠 수 있지만 사실 전통 공연이라 할 수 있겠죠. 현대적인 작품일지라도 전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현대적 국악은 일반적인 ‘퓨전’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퓨전이란 게 서로의 특징을 잘 살려 제대로 접합시키기보다 막 섞거나 단순 결합시킨 것 같은 느낌일 때가 많잖아요. 서양음악을 단순히 악기만 국악기로 바꿔서 연주하는 게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런 식의 해석은 전통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박한 개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은 아직도 일제시대에 주입된 관념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은 옛날 것이고 서양의 문물보다 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죠. 이런 경우 전통음악을 제대로 해석했다고 할 수 없을 거예요. 이렇게 서양 중심의 시각에서 굳어진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시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공연이 있다면요.

작년 1월 <피리독신>이라는 공연을 했어요. 45분 동안 아무 것도 정형화된 것 없이 즉흥연주를 하는 공연이었어요. 저 역시도 결과물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죠. 듣기 편한 음악도 아니었고, 굉장히 현대적이었기 때문에 ‘국악다운 것’을 기대하고 오실 관객 분들이 실망하실 것 같았어요.
그런데 생전 처음 듣는 피리 소리, 처음 보는 공연 형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려와 달리 오히려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셨어요. 물론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국악에서 이런 소리도 날 수 있어?’라는 피드백을 받았죠. 국악기에 대한 기존의 편견 어린 시점을 전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국악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고요. 국악기가 ‘우리나라 악기니까 보존해줘야지’가 아니라 하나의 매체로서 존재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었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국악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을 깨뜨리고 싶었어요.
단지 ‘우리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우리 것이 왜 좋은지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거죠.
이제는 국악도 하나의 음악으로서 좋은 결과물을 내보여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최근 관심 있게 탐구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 미술에 관심이 많아요. 성북동에서 활동하는 ‘아트플러그’라는 예술협동조합에 이사를 맡으며 미술을 접하고 있는데, 미술이라는 장르가 변모해왔던 길이 재미있더라고요. 현대적 국악과 달리, 현대 미술은 많이 소비되고 있어요. 쉬운 예로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죠.
그렇다면 미술은 어떻게 그 지점까지 갔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현대 미술 작가들은 스케치와 같은 기본적인 기법부터 시작하더라도 각자의 개념을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형식과 매체로 풀어내고 있어요. 이와 다를 바 없이 국악도 전통이라는 기본을 배우는 데서 출발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현대적인 것으로 다양하게 풀릴 수 있을까, 그 활로를 고민하고 있어요.

또한 음악을 연주하고 작품을 만들 때, 이전에는 여러 악기를 갖다 붙이거나 변주하는 정도의 일차원적인 작업에 그쳤다면 이제는 하나의 큰 ‘작품’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이나 미술이 하나의 소재를 여러 가지 장치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작품’의 개념을 가진 장르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장르와의 교류가 제 음악에 투영되고 있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김시율 아트 컴퍼니는 좀 더 확실한 문화 플랫폼의 형태를 보여주려 해요. 김시율 아트 컴퍼니에서 청년예술가 후배들과 함께 장기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싶어요. 워크샵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가 입시, 입사를 위한 연주자가 아닌 하나의 예술가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 역시도 저에게 많은 힘을 주셨던 선배들을 보며 훌륭한 예술가의 꿈을 키워갔고 어떤 것이 진정한 가치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거든요.

‘나는 000한 방식으로 음악을 통해 세상을 좋게 만들고 싶다.’

예술은 자기표현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하나의 단상을 음악으로 표현했을 때, 우연한 지점에서 관객들에게 그것이 확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 지나가다가 갑자기 하나의 작품에 꽂히는 순간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이란 그런 거예요. 엄청나게 많은 미디어 속에서도 지나가다가 우연히 딱,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요. 이렇게 예술가와 관객의 진심이 통할 때 받는 감동이 ‘음악이 세상을 좋게 만든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 삭막한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진심이 통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예술이 서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 주는 거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큰 변화는 작은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관객 분들이 예술에 좀 더 가볍고 쉬운 태도로 접근하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관객 분들은 ‘내가 이 공연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야겠다’, 혹은 ‘얼마나 잘 하는 지 보자’는 등의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하며 공연을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진지한 태도보다는 좀 더 편한 태도로 접근한다면 훨씬 더 작품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받는 감동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