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 ‘한국망막변성협회’ 유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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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장애인이 되어 예고된 불행을 맞는 일은 마치 사형수가 된 기분이었어요.

전 틴틴파이브 멤버이자, 개그맨으로 활동했던 이동우 씨.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고백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슬픔을 표했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의 기능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진행성 질환으로 결국에는 시력을 잃게 되는 안(眼)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2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도 망막색소변성증 환자가 5,000명 달하며 현재도 꾸준히 증가 추세인 반면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많은 환우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형곤 교수는 유전성 망막질환 진단과 치료에 있어 ‘안과 의사들이 추천하는 안과 의사’이다. 망막질환과 관련해 국제적인 논문을 200여 편 썼으며 유전성 망막질환에 관한 교과서를 집필하고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망막색소변성증에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전문의이자 연구자로서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환우들과의 소통, 시각장애에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고민 등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안과 전문의이자 한국망막변성협회의 유형곤 교수. 질환을 마주하는 의사로서,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늘 고민하고 도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 전문의 유형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망막변성협회를 설립하여 실명의 주된 원인인 망막 질환, 그중에서도 변성 망막질환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삶의 질 그리고 복지와 연결되는 의료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오늘 컬처디자이너 인터뷰이다 보니 좀 전의 소개 말씀 중에 ‘의료문화’라는 말이 와 닿았는데요, 의료문화라 하면 정확히 어떤 것일까요?

모든 사회 분야에는 그 분야의 문화가 존재해요. 의학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경우 빠르게 의학이 발전하다 보니 의료 지식, 기술, 시설, 인프라 등 전반적인 의료수준이 단시간 내에 발전하고 화려해진 면이 있어요. 그에 따라 환자들의 기대치도 빠르게 높아졌고요. 그러다 보니 오는 부작용들이 있어요. 이제는 기술뿐 아니라 ‘의료문화’가 함께 성숙해져야 할 단계인 것 같아요.

한국망막변성협회를 설립하신 것도 의료전문가로서 좀 더 나은 의료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이신가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거슬러 올라가서 협회 설립의 발단이 된 초기 모임을 생각해보면 단순하고 소박한 시작이었어요.
제가 처음 연구회를 만들었을 당시에는 명확한 치료법이 없는 망막 변성질환에 대해 전문 의사들 스스로도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의사들이 주로 접하게 되는 환자나 질환은 사실 단순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 반면 요즘 점점 증가하고 있는 ‘변성질환’에 대한 연구나 치료책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죠.

동료 의사들을 같이 만나 얘기하면서 망막변성질환에 대한 개념을 체계화 하며 서로 도움을 많이 받고, 그럼 자연스럽게 환자들을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처음에 시작을 한 거죠.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하는 목표는 오히려 최근에서야 드는 생각이고요.
진료와 연구 활동에 있어서도 나름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왔지만, 오랜 시간 의사로서 일하다 보니 사회적인 책임감이 자연스레 생기더라고요. 현재 나의 위치에서, 무엇이 가장 스스로를 위해 또 사회를 위해 필요할까 고민하다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시스템에 묶여있기 때문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에는 망막변성질환 관련 교과서가 없었어요. 그래서 2011년에 동료 의사들이 함께 모여 교과서를 집필했어요. 그걸 계기로 연구 성격의 모임이 계속되다 보니 그 다음엔 연구협회를 만들게 됐어요. 그게 더 나아가 사회적 차원의 협회로 점점 발전이 된 거죠. 작년 하반기에는 기부금 단체가 되었어요.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얼까 고민 끝에 연구자, 환우, 정책가들이 함께 섞여 구성된 현재의 협회를 만든 거예요.

의학 관련한 모임은 대체로 ‘환우모임’ 아니면 ‘연구협회’가 주를 이루는데, 현재 한국에서의 망막변성질환 치료 및 연구 환경과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아직은 세분화된 협회 활동보다는 의사, 연구자, 환우, 정책가 그룹이 두루 교류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러면서 환우들의 어려움을 전문가들이 대변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소통의 장(場)이될 수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저도 한국망막변성협회가 잘 성장해서 연구협회, 환우모임, 정책협회 등 활동사업이 전문성 있게 세분화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는 유전성 망막질환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연구 활동,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치료지원사업, 환우를 위한 정책개발지원사업, 대국민 홍보 및 캠페인사업, 학술지원 및 교류사업, 전문지 출판사업 등을 두루 진행하고 있습니다.

망막변성이라는 질환이 아직은 좀 생소한데요, 알기 쉽게 다시 한 번 설명부탁드려요.

망막변성 질환은 시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막의 신경조직에 유전, 환경, 노화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변성이 발생해 제 역할을 못 하고 심각한 시력 저하 및 실명이 야기되는 질환입니다. 아직까지는 질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력을 되찾게 하는 치료법은 없는 실정입니다.

원인이 분명치 않다는 점, 신경에 변성이 오고 파괴되어 원상복구가 안 된다는 점, 진행성이라는 점,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근본적 치료방법은 아직 없다는 점에서 망막변성질환은 뇌 질환과 비교하자면 알츠하이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어요.

유전성 망막변성 질환의 경우 양안 모두 침범되는 경우가 많아 환자 본인 및 가족의 고충이 크고 시각 장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죠. 하지만 환자 수가 많지 않은 희귀질환에 속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의 약제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에요. 국가적 사회적 지원을 통한 질환 연구 및 치료제 개발이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유전성 망막변성 질환 환자들에서 원인 유전자에 대한 분자진단을 시행하고 있고,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 치료 등 치료제 개발에도 점점 많은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고요.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요?

한국망막변성협회는 망막질환 치료 연구 활동과 동시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밝은 세상 만들기’라는 스포츠 나눔 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스포츠, 댄스, 조정, 걷기 등 매회 다른 주제로 진행해왔고요.

언젠가는 실명이 될 것이란 두려움이 망막변성질환 환우와 그들의 가족들이 겪는 1차적인 고통입니다. 그분들에게는 치료법 개발이 가장 절실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상적인 차원에서 환우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본인의 변화에 대한 주변의 이해와 도움, 그리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책 개선과 사회활동 참여 기회예요.

협회에서는 이런 고충에 대해 주변에 알리고 같이 동참하기 위해 앞서 말한 액티브한 나눔 행사를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혹은 망막 질환을 겪는 분들이 응원을 받고 희망을 얻어 가실 때 저도 기쁘죠.

반대로 힘든 순간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치료책 개발에 대한 압박이죠. 치료책을 개발해내는 것은 의사로서 견뎌내야 할 숙명 같아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개발해야 하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협회 활동의 좋은 점 또한 이것이에요. 저 혼자 하면 외로운데 같이하니까 좋잖아요. 특히, 연구자 입장에서 만을 벗어나 환우와 정책자문가와 소통하며 연구할 수 있으니 연구를 할 때 스스로 동기부여가 많이 돼요.

진료와 연구만으로도 중요하고 큰 일인데, 의료 활동과 협회의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 교수님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의사로서의 능력의 범위나 강점이 함께 변하는 것 같아요. 기술적인 정밀함 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어요. 대신 많은 경험에서 오는 깊이와 전문성, 그리고 질병과 의료를 큰 틀의 사회적 시각에서 이해하는 통찰력이 생기죠.

저도 처음 의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의료와 연구 활동에 매진해왔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저의 관심의 폭이 사회적으로 좀 더 넓어지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망막변성협회도 현재 제가 가진 경험과 능력을 사회적으로 가장 잘 공유하고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죠. 젊은 의사들에게 저의 경험과 리더십을 나누고 저 자신도 실력 있는 의사로 있을 수 있도록 계속 자극을 받고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열정, 거기에 공익성이 더해질 때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교수님께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만족’은 생기지만 그것 자체로 ‘자기의미’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많은 질문을 하게 되고,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잖아요. 저는 그때마다 저 스스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답을 얻었어요.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높은 진료율을 기록하는 것보다 제가 가진 능력을 꼭 필요한 이들과 나누며 의사로서 저 자신에게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하고,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쌓아갈 수 있죠.

결국, 이것이 의사라는 나 자신, 내 역할에 자기의미를 부여하게 되기에 공익적 활동, 젊은 전문의 양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http://kard.or.kr/

인터뷰 윤혜성
사진제공 (사)한국망막변성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