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때로 상처를 낫게 한다, 임종진 컬처디자이너

DSC09271

후천적 정신장애인, 가정폭력피해자, 광주5.18유공자, 고문피해자, 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질환, 개인적이자 동시에 사회적 문제, 그리고 역사적이자 정치적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들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졌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안고 살아간다. 그 시선을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가정폭력, 국가폭력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 그 자체다. 폭력은 상처를 낳는다. 그 상처들은 내면에 우울과 분노를 키우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이라는 자기파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 사진치유공감 아이 대표를 맡고 있는 임종진씨. 오늘은 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진치유란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미술치료와 비슷한 것인가요?

사진치료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에요. 서구에서는 이미 미술치료와 함께 일반화된 개념이죠. 저는 굳이 치료라는 말을 안 쓰고 치유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엄밀하게 저는 [행위 중심] 사진치료입니다. 기존의 미술치료나 사진치료는 내담자가 그리거나 찍어온 결과물을, 임상적 데이터에 근거해서 분석하고 진단해서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과정인데요. 저는 ‘사진을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518 피해자 같은 경우, 자신이 고문을 당한 장소를 근처에도 잘 못 가요. 그 공간이 주는 공포를 못 견디는거죠. 시간이 흘렀어도 그 공간의 기억은 남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남녀가 사귀다 헤어지게 되면 평소 자주 가던 장소를 잘 못 가는 경우와 비슷해요. 물론 그 정도는 완전히 다른 거지만. 그 장소만 가면 옛날 생각이 나고, 헤어진 사람이 그립고 그래서 그 근처는 안 가려고 하고. 사랑하다 헤어진 경우도 그런데, 일방적인 어떤 폭력에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어떻겠어요? 그냥 끔찍한거죠. 그 상처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파괴해 갑니다. 공간과의 대면은 자신의 상처와의 대면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그 공간을 대면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바라보는 과정으로 나아가도록 하는거죠. 이 이야기는 518피해자분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고, 개인마다 모두 상처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과정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임대표는 2016년 서울 시청 갤러리에서 “기억의 회복”이라는 이름의 오월광주치유사진전을 열었었다. 그가 심리상담을 진행했었던 518 관련 피해자들이 상담과정에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작년의 전시 제목이 기억의 회복이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지어진 이름이었군요.

네. 기억은 사람에게 중요한 거잖아요. 개인의 역사는 기억 속에서 보존되고 발전되는데, 그 분들의 경우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고 두려워해요.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이 망가지는 것과 동일합니다. 특히 폭력의 피해자들은 자존감이 약해집니다. 자신을 부정해야 당장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자아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 자리에 분노가 자리잡죠. 그런데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기억의 회복은 중요합니다. 거기에 “잃어버린 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상처의 대면’과 ‘원존재로서 자기 자신과의 대면’입니다.

‘상처의 대면’, ‘원존재로서 자기 자신과의 대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이 부분은 사진을 보면서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기억의 회복’에 나왔던 이성전님의 경우를 말씀드릴께요. 이성전님은 80년 당시 보안사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반신마비가 오신 분입니다. 당시 취조를 받았던 보안사의 고문실을 찾아갔었죠. 처음 그 방을 맞닥뜨렸을 때 이성진님은 분노와 공포로 아무 것도 못 하셨습니다. 물론 사진도 못 찍었죠. 두 번 세 번 그 공간을 찾으면서 점차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과거 당했던 폭력의 기억 속에서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고문실을 찍으며 그때 일들을 알려야 한다고, 그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처의 대면이죠. 반면 나무사진이 있어요. 죽은 나무입니다. 그 나무를 처음 찍을 때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죽은 나무 한 켠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의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보게 된 거죠. 원존재로서의 자신을 그렇게 대면하게 됩니다. 이성진님은 요즘 꽃 찍기를 무척 좋아하세요. 사진을 통한 대면은 그런 의미랍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일간지(한겨레신문) 사진기자를 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하잖아요. 기자란 직업이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접근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의 불행을 찍는 거죠. 거기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내가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걸까? 내가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진기자들이 그런 갈등들을 겪습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지던 시점에 2차 이라크 전쟁에 특파원으로 취재를 가게 되었어요. 폐허가 되다시피 한 바그다드의 민간인들, 특히 아이들을 보면서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구요.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제출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진이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대상화하고 찍는 이는 한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 그런 부분인 것 같네요.

그렇죠. 그래서 회사를 관두려 한거고요. 선배는 휴직을 권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상태였지만 캄보디아로 갔습니다. 여행은 아니고 제 고민을 직접 부딪혀 볼 필요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에이즈환자센터, 장애인기술세터를 비롯해서 여러 도시 빈민촌을 오갔습니다. NGO활동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더라구요. 마침 그때 수원정신보건센터의 상담사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다고. 후천적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분들을 만났어요.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던 중에 장애가 발생한 분들이라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고 스스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다시 맞닿을 수 있는 기제가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분들과 함께 사진찍기를 시도 해봤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때 처음 사진치료라는 것을 생각을 해보게 된 것 같아요. 잠깐 그 일을 하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는데, 계속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는거에요. ‘쓰임이 있는 사진’ 이런 말로 정리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관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진치료를 공부하고, 자격증도 땄습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과정도 밟고 있죠.

지금 진행 중이신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중심이 되어 진행 중인 오월광주치유 프로그램, 국가폭력 고문피해자를 위한 단체인 지금여기와 함께 진행 중인 프로그램 두 가지가 큰 것이구요, 가정폭력, 발달장애가족 등 개별 심리 상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만 심리상담의 특성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인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우선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없어요.

내담자들 상처의 크기가 너무 크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상담자의 심리상태도 많이 약해질 것 같은데요.

그렇죠. 사실 저 스스로도 심리치료를 따로 받습니다. 내담자와의 공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저 역시 많이 힘들어지더라구요. 혼자 감당하기에는 사실 버겁습니다. 다행히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어서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의무감도 있구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리 주변에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에서 사회적 편견 등에 의한 시선의 폭력, 가정 폭력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비록 저 혼자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치유센터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의지만으로는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암묵적 폭력을 배격하고, 그 피해자들을 도와줄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배려와 공감이 시민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도 그런 우리 스스로가 저지른 일들의 치유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일정인 장애아동의 상담을 위해 서둘러 인터뷰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보면서 영화 ‘그린마일’의 존 커피가 떠올랐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상대의 병을 치유해주는 그는, 대신 상대의 병을 자신의 몸으로 옮겨온다. 극단적인 비유일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만큼이나 많이 지쳐보이는 …